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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舍廊防

예(禮)와 충(忠)

by 낙동강. 2024. 9. 21.

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해석>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자가 대답하였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는 데에는 예(禮)로써 하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에는 충(忠)으로써 합니다.”

<내용>
이 문답은 당시 노나라의 군주였던 정공(定公)과

공자 사이에 주고받은 것이다.

정공의 이름은 송(宋)이며, 시호가 정(定)이다.

군주와 신하 간의 인간관계와 소통의 방식은

전통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군주와 신하 간에 인간관계가 원만하고

소통이 원활하게 된다면 그 나라는

안정적으로 다스려질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나라가 혼란스럽게 될 것이다.
군주는 신하를 권모술수나 무력이 아니라 예의로써 대하고,

신하는 자신의 충심(忠心)으로 군주를 섬긴다면

적어도 그 나라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예(禮)란 개념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기는 하지만

예의·교양·매너·에티켓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군주에게도 감히 부르지 못하는 신하가 있을 때

그 나라는 군주와 신하 간에

일정한 긴장관계를 지니면서 유지될 수 있다.

신하는 군주를 보필하는 존재이자

군주의 잘못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할 때

진정으로 신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충(忠)은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보는

아랫사람의 윗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이나 복종과는 다른 것이다.

자신의 양심을 어기면서 군주에게 충성하는 것은

맹목적인 복종과 다를 것이 없다.

충심(忠心)은 진정한 충심(衷心)에서 우러나올 때

그 가치를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토론과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 사회이다.

토론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비판을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토론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보니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쌍방 간의 토론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또한 윗사람이나 상급자의 명령이나 지시를

비판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충심(衷心)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나

비판을 한다고 하더라도 ‘튀는 사람’,

‘버릇없는 사람’ 등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남긴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중국인들에게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주 중의 한 명으로 거론된다.

그가 훌륭한 군주 중의 한 명으로 중국인들에게

사랑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유는

군주와 신하 간에 예로써 대하고,

신하들의 충정(衷情)에서 우러나오는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순자(荀子)는 “명령을 거스르고 군주를

이롭게 하는 것을 충이라 한다(逆命而利君謂之忠)”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군주가 다스리던 시대는

지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위의 공자와

순자의 말은 다시 음미해 볼 만한다.

충심(衷心)과 충심(忠心)이 일치하는 사람을 생각해 본다.

#출전; 『논어(論語)』「팔일(八佾)」
#내용소개; 이상훈(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