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잡념을 떨치기에 좋은 곳이다. 서른이 되어서도 불안정한 스스로를 달래고자 홀로 산에 오른 날이었다. 정상까지 빠르게 도착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발목을 접질 리고 말았다. 발목이 운동화가 조일 정도로 부어오르더니 점점 아려오기 시작했다. 뒤에서 오던 아저씨가 등산 스틱을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괜찮다며 사양했다.
등산객들은 느리게 하산하는 나를 배려했다. "천천히 가도 돼요. 조심해요." "아프겠다. 힘내요."라며 내게 위로를 건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산 스틱을 빌려주겠다던 아저씨 무리와 다시 마주쳤다. 그분들 은 나를 보고 걱정을 한 무더기 쏟아 냈다. 결국 엉겁결에 등산 스틱을 받고 말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만나요."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았고 언제 만나자는 기약도 없었다. 그래도 등산 스틱 덕분에 한결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후, 버스 정류장에서 그분들을 기다리 기 시작했다. 30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지만 꼭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떠나지 않 았다. 기다린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갈 즈음 익숙한 무리가 보였다. 그분들은 등산 스틱을 건네받고 기특하다는 듯이 웃음 지었다. 이후 깁스를 하게 된 나는 누가 봐도 환자였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안쓰러워 했다. 꼭 엄마, 아빠가 여러 명 생긴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다 거리를 나서면 사람들 은 "힘들겠어요." "괜찮아요?" 하면서 말을 붙여 왔다. 간호사인 나는 바로 병가를 내지 못하고 계속 일해야 했는데, 환자들도 나를 안타까워했다.
낯선 사람이 나를 걱정하는 일에 익숙해진 무렵이었다. 그날도 한 아저씨가 "아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하며 말을 걸어왔다. 넉살 좋게 "그러게요." 하고 웃으며 얼굴을 보자 내가 지난 가을에 돌본 환자였다. 함께 접수를 기다리는 동안 아저씨는 하나 남은 대기실 의자를 나에게 양보했다. 간 호사였던 내가 환자가 됐고, 환자였던 아저씨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약속했다. 나는 잘 쉬고, 아저씨는 더 건강해지자고. 집 앞 횡단보도는 보행 신호가 유난히 짧다. 아직 깁스를 풀지 않았을 때, 길을 다 건너지 못했는데 빨간불로 바뀐 적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 경적을 울리는 차는 없었 다. '빨리빨리'의 세상에서 안내심 있게, 느린 걸음을 기다려 준 누군가만 있었다. 그동안 나는 등산 스틱마저 거절할 정도로 낯선 사람을 경계했었다. 하지만 이런 시 간을 거친 뒤 이전과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다.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아픈 발목을 붙잡고 있었을지 도 모른다. 아프면 서럽다고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걱정을 사고 나니 그 서러움이 거짓말처럼 녹았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힘든 일에도 "허허." 하고 웃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다쳐서 어려움을 겪는 나에게 선뜻 등산 스틱을 내어 준 따뜻한 그분들처럼. 이민주 | 인천시 미추홀구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_ 문태준